설교

[설교]그가 마음이 교만하여_역대하 26장 6-21절

대디 김 2024. 1. 2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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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가 마음이 교만하여
말씀: 역대하 26장 6-21절 

우리나라 우화 중에 ‘하늘을 나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연못에 살고 있던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구리는 하늘을 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늘을 나는 황새에게 자신을 데리고 하늘을 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황새는 개구리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개구리를 하늘로 데리고 갈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개구리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나무 조각을 가지고 한쪽은 황새가 물고, 다른 한쪽은 개구리가 물고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새는 나무 조각을 꼭 물고 있으라고 말하고 개구리가 물고 있는 나무 조각을 물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개구리는 신세계를 맛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보는 세상은 정말 넓고 좋았습니다. 
땅 밑에서는 다른 개구리들이 하늘을 나는 개구리를 보며 신기해하며 그들을 향해서 
말을 합니다 ‘대체 누가 저런 좋은 아이디어를 낸 거야?’
하늘을 나는 개구리는 그들의 말에 우쭐해서 대답해 주었습니다 ‘내가 했지’ 
그리고 개구리는 하늘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높게 올라갔을 때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꼭 읽어야 할 책 중에 ‘천로역정’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독서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천국을 향해 가다가 ‘겸손의 골짜기’를 내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겸손의 골짜기에서 내려가다가 수 없이 미끄러져 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넘어짐으로 인해서 크리스천은 악마와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골짜기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겸손의 골짜기를 내려오기 위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경고문을 붙이게 됩니다. 
겸손이란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이 낮은 겸손의 골짜기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겸손의 자리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우리는 교만이라는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마음이 높아서이고, 삶의 태도가 높아서입니다. 
마음을 낮추고, 자세와 태도를 낮출 때, 우리는 교만의 유혹에서 벗어나 겸손의 자리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낮은 자세로 겸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저는 ‘교만’ 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특별히 오늘 웃시야 왕의 이야기를 통해서 교만이 우리에게 어떻게 찾아오는지, 또 교만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는지, 교만의 결과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만은 우리에게 어떻게 찾아오는가? (6~15절, 16절)
다같이 6~15절까지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웃시야 왕은 아버지 아마샤의 뒤를 이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나라를 다스렸던 성군입니다. 그는 비록 16세라는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남 유다를 52년간 잘 다스린 왕입니다. 
하나님도 웃시야 왕을 좋게 여겨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웃시야 왕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이야기가 우리가 읽은 6~16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6~7절에 보니깐, 블레셋 지역을 다 통일하게 하셨습니다. 성읍도 짓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쳐서 몰아내게 하셨습니다. 또 8절에 보니깐, 암몬 사람들은 웃시야 왕이 다스리는 유다에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웃시야라는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9-10절에 보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웃시야가 다스리는 나라는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11절 이하에서는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안정되고, 강력한 군사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다스리는 그 시절을 한마디로 말하면 ‘태평성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형통하고, 모든 것이 다 잘되는 상황 바로 그 상황 속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다같이 16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옳게 정사를 펼치던 웃시야 왕이 강성해지니깐, 교만하게 되어, 악을 행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강성함’ 즉 잘나고, 축복받고, 은혜받을 시절에 조용히 우리를 찾아오는 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죄입니다. 
교만이 왜 무서우냐 하면 그 교만이라는 죄는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축복 속에 숨겨져 있고, 우리의 은혜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만사형통에 교만이라는 죄는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만이라는 죄는 찾기가 힘들고,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하면서도, 교만한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그 교만이 수많은 좋은 것들로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만이라는 죄가 우리의 축복에서 오는 것일까요?
교만이라는 죄를 숨기는 것은 우리의 축복과 은혜, 우리의 만사형통일 수 있지만 교만이라는 죄가 찾아오는 직접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다같이 15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 짐이었더라”
웃시야 왕의 실수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강성해졌던 것은 자신의 지혜도, 자신의 능력도 아닙니다. ‘기이한 도우심’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그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기에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삼손이라는 힘센 사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징적인 것이요, 삼손의 힘의 근원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삿 16:20-21)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린 삼손에게 하나님께서 떠나가시자, 삼손은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교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가 언제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릴 때,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역사를 기억하지 못할 때 우리는 교만의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숨겨진 교만의 죄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살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역사를 기억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이루신 결과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교만의 자리에서 벗어나 겸손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도우신 ‘기이한 도우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16~19절)
다같이 16절 하반부부터 19절 상반부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교만은 우리 삶에 ‘선을 넘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내 역할과 내 지위, 내 자리의 선을 넘어서는 행동으로 교만은 나타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에게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버리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고유 권한과 하나님의 질서에 선을 넘어 버리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교만’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담은 선을 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질서를 넘어 버린 아담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바벨탑 사건에서도 인간의 교만이 등장합니다. 하늘에 탑이 닿도록 쌓은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자고 결의를 합니다. 
하늘에 자신들의 이름을 높여서 세상 가운데 널리 퍼져 나가게 하려는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선을 한참을 넘은 것입니다. 
고라 자손이 있습니다. 고라는 제사장이 되겠다고 반역을 일으킵니다. 제사장은 오직 아론의 후손들만이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질서입니다. 그런데 고라는 그 선을 넘어 버립니다. 쉽게 넘어 버립니다. 교만한 고라입니다. 
사울 왕이 있습니다. 제사장의 지위를 넘어 버립니다. 

웃시야 왕도 사울 왕처럼 제사장의 지위를 자신이 대신하고자 합니다. 선을 넘어 버린 것입니다. 제사장 아사랴가 80명의 제사장을 데리고 가서 막았는데도 웃시야 왕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분향을 드리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수, 자신의 역할,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선을 넘어 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교만하게 되면 일단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만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화를 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 중에 또 하나는 바로 ‘화를 잘 낸다’라는 것입니다. 
화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 교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웃시야 왕도 분향을 드리다가 말리는 제사장을 보고 화를 내게 됩니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은 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겠다고 수색하는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왜요? 사울이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름 부은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분수를 지켰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선을 지켰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도 그는 왕궁에서 도망 나가게 되는데, 도망가는 다윗왕을 향해서 ‘시므이’라는 사람이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붓게 됩니다. 
이것을 본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려고 했을 때, 다윗은 그를 만류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삼하, 16:11~12)
다윗은 하나님이 하실 것과 자신이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분수를 알고, 선을 지켰던 사람이 바로 겸손한 다윗입니다. 
교만은 ‘선을 넘는 모습’으로 우리 삶에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선을 넘지 마십시오,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선을 넘지 마십시오, 내 분수와 내 자리를 잘 기억해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 교만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19~21절
다같이 19~21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웃시야 왕은 제사장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향단을 들고 제사를 드리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는데, ‘이마에서부터 문둥병’ 이 발현되어 온몸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웃시야 왕은 죽을 때까지 별궁에서 갇혀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넘은 교만한 웃시야 왕에게 하나님은 ‘문둥병’의 벌을 내리셨습니다. 
문둥병은 전염병으로 인식되어서 격리되는 것이 특징인 병입니다. 
교만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야 했고, 사람들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사람을 멀리하게 합니다. 교만의 결과는 버려짐입니다. 

 

다니엘서 4장에 보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 지붕에 올라 자신이 세운 큰 도시 바벨론을 바라보며 자신을 자랑합니다. ‘이 큰 성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다니엘서 4:30) 그 말이 마치기도 전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느부갓네살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너의 왕권은 너에게서 떠났다, 너는 인간 사회에서 쫓겨나 7년 동안 들짐승과 함께 살 것이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이 왕의 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도 헤롯 아그립바 왕의 죽음이 나오는데, 헤롯 아그립바도 교만으로 죽음을 맞이한 왕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 나라에서 나는 식물을 먹어야 했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유대와 화친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어 헤롯 아그립바에게 나아갔습니다. 
사신과 백성들 앞에서 헤롯 아그립바 왕은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연설을 들은 많은 백성이 그를 향해서 칭송합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이 말을 들은 아그립바는 우쭐해합니다. 교만에 빠집니다. 성경은 아그립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행 12:2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치심으로 그는 벌레에 먹혀 생을 마감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교만의 끝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이요, 사람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음입니다. 
내 주변에 믿음의 사람들이 없고, 진실된 친구들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이 내 곁에 머물러 계시는지 살펴보십시오, 
교만은 외로운 인생길에서 우리를 더 외로운 인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교만한 사람 곁에는 하나님도, 진실된 친구들도 없습니다. 
교만의 친구는 오직 패망뿐입니다. 
바라기는 겸손하여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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